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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호] 영화_차근차근, 천천히 영글어가다 <인생후르츠>

by 에너지시민연대 posted Nov 3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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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차근, 천천히 영글어가다

<인생후르츠>



감독 | 후시하라 켄시 | 다큐멘터리
2018.12.06. 개봉| 90분| 일본 | 전체 관람가



첫눈에 마음 설레는 까닭은 아마도 첫사랑처럼 아련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련하게 살포시 내려야할 첫눈이 펑펑 쏟아지니 설렘도 잠시, 당혹감이 일었다. 폭염, 한파 등 이상기후에 놀란 가슴, 폭설 같은 첫눈에 놀란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말이니까, 오늘은 훈훈한 영화 이야기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마오>, <워낭소리>, <리틀 포레스트>를 좋아했다면 마음에 쏙 들 그런 영화다. 한 해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에너지를 아끼고 플라스틱을 줄이고 환경을 살리기 위해, 아니 결국은 나를 살리기 위해 애쓴 모두에게 종합선물세트같은 힐링무비 한 편을 소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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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후르츠>. 둘이 합쳐 177살, 65년을 함께 한 노부부의 천천히 맛들어가는 인생 이야기이다. 작은 집을 둘러싼 커다란 텃밭에 주렁주렁 매달린 과일과 열매들, 채소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그리고 꾸준히, 천천히 밭을 일구는 90세 할아버지와 역시 차근차근, 천천히 무엇이든 해내는 87세 할머니가 소박하고 정갈한 밥상을 마주하고 있다. 할아버지의 최애 음식은 감자 요리, 할머니는 딱 하나 감자를 못먹지만 세상 제일 사이좋은 65년차 달달커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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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계의 에이스로 60년대 대규모 주택단지 작업에 참여했던 츠바타 슈이치는 나고야 근처의 뉴타운계획 설계를 의뢰받는다. 지형을 살려 단지 사이로 숲을 남기고 바람이 지나는 길을 만드는 꿈의 설계도가 그려졌다. 그러나 고도 경제 발전기의 일본은 꿈 대신 효율을 선택하고 더 많은 집을 위해 산은 깎여 나갔다. 좌절한 츠바타 슈이치는 교수직과 건축사무소를 정리하고 뉴타운 안에 작은 단층집을 지어 자급자족 슬로라이프를 시작한다. 왜 자신의 꿈이 좌절된 그 곳에 남아 살게 되었을까? “밀어버린 산을 어떻게 다시 산으로 만들 수 있을까? 내 땅에 작은 숲을 일궈 녹색 저장소로 만들고,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으로 산의 일부를 만들자”. 이렇게 시작된 느린 삶을 즐거이 함께 하는 아내 히데코는 밭일, 요리, 뜨개질, 베틀 짜기 등을 꾸준히 해내며 밭에서 나는 70종의 채소와 50종의 과실들로 여느 셰프 부럽지 않은 자연의 밥상을 만드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음식들이다.



하루는 지역 병원장의 편지를 받는다. “현대인은 경제 중심 사회에 시달리며 원래 모습을 잃어버릴 정도로 일에 몰두하며 병을 얻습니다. 인간적 삶이란 무엇일까요? 저희 병원 건축에 힘이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90세에 건축 의뢰를 받은 슈이치는 ‘콘크리트와 모던디자인’이 아닌, 자연과 하나 되는 병원의 밑그림을 그려준다. 그리고 밭일을 마친 어느 날 잠든 듯 죽음을 맞이하지만 이상하게 슬프지 않다. 온 삶을 통해 차근차근, 천천히 영글고 꽃피우고 열매 맺고, 다시 부는 바람에 이파리 떨어져 땅을 살찌우는 순환의 삶을 살았기에... 히데코는 밝은 깃발로 조기를 대신하고, 남편의 사진을 안고 완공된 병원을 둘러본다.  
        


“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진다
낙엽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 진다
땅이 비옥해 지면 열매가 열린다
천천히, 차근차근.”

(12월6일 개봉) 


 



입력 : 2018-12-03
작성 : 이은진 플랫폼C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