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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현장을 가다]2부-②더운 프랑스, 재앙을 부른다

경향신문 | 입력 2008.02.04 03:00


ㆍ지난해 100년만의 '따뜻한 겨울' 생필품값 들썩

↑ “아주 늦은 것은 아니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의 파리지부가 지구 온난화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2007년 에펠탑에 내건 대형 온도계 현수막. ‘아주 늦은 것은 아니다(It's not too late)’라는 글귀가 쓰여있다. 그린피스 제공

"기후 변화가 북극, 알프스 빙하나 녹게 하는 줄 알았어요" 지난해 12월9일 프랑스 파리 레알 지하철역 앞에서 기자와 만난 에스테르는 대형 슈퍼마켓에 들어서며 말했다. 그는 와인코너에서 올해 생산된 보졸레 누보(햇와인)를 가리키며 "날씨 때문에 맛이 예년보다 안 좋다"고 불평했다. 담당 점원은 "올해는 최근 30여년 만에 날씨가 가장 변덕스러운 해라서 이전과 맛이 좀 다를 수 있다"고 했다. 와인은 기온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데, 지난해에는 4월에 비가 많이 오고 5~8월에 서늘하며 일조량이 부족해 맛이 다르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에스테르를 좇아 인근 식품점에도 들렀다. 그는 식품 가격 인상이 날씨 변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얘기를 전했다. 여기서 판매 중인 1㎏에 1유로짜리 밀가루와 0.7유로짜리 쌀을 가리키며 전년도만 해도 각각 0.8유로, 0.4유로였다고 말했다. 시금치 등 주요 채소 가격도 전년도보다 10% 정도 올랐고 프랑스 사람들이 주식처럼 먹는 바게트빵도 0.9유로에서 1유로로 0.1유로 정도 인상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값이 올랐음에도 품질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었다. 식품점 주인은 "곡물이나 채소에 대한 수요가 늘고 유가가 치솟는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가격이 올랐지만, 올해 날씨가 좋지 않아 생산량이 많지 않았던 것도 가격 인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에스테르는 최근 프랑스의 계절별 날씨 변화를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2007년 1월 겨울은 유례없이 따뜻했다. '100년 만에 따뜻한 겨울'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런 날씨는 봄철까지 이어졌다. 한낮 기온이 평년보다 10도 이상 높은 30도에 육박했고 비는 거의 오지 않았다. 여러 차례 폭염을 경험한 파리 시민들은 사하라 사막 같은 여름이 닥치지 않을까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여름에는 '이상 저온' 현상에 시달렸다. 예년 가을날씨였다. 겨울 날씨는 추웠다 더웠다를 반복하고 있다. 에스테르는 "11월 말까지 기온이 22도였다가 12월 초에는 기온이 뚝 떨어지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며 "지금 내리는 이 비도 1주일째 계속된 것"이라고 말했다.

노인들은 기후 변화를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여름철 정오부터 오후 4시까지 외출하지 말 것. 하루 두 차례 샤워를 할 것. 목이 마르지 않더라도 물을 마실 수 있는 만큼 많이 마실 것.' 이라크 파병군의 수칙 같은 이 지침은 파리시가 노인들에게 당부하는 권고문이라고 파리에 사는 쥬느비에브 리베라(63)는 말했다.

이 권고문은 몇 해 전 폭염의 충격으로 생겨난 것이다. 프랑스에는 2003년 여름 한낮 기온이 섭씨 49도까지 올라가는, 예상치 못한 더위가 닥쳤다. 이 더위에 적응하지 못한 노인 1만5000명이 세상을 떠났다. 주로 홀로 집안에 머물러온 독거 노인들이 희생됐다. 시신안치실이 부족해 식당의 냉동창고까지 동원되는 끔찍한 '재앙'이 빚어졌다.

리베라는 이 같은 사태 이후 정부에서 오랫동안 연락이 닿지 않는 독거 노인을 직접 방문하고, 노인 요양 시설에 에어컨 설치를 의무화했다고 전했다. 2006년 여름 날씨도 몹시 더웠지만 이런 대처 덕분에 큰 사고는 막을 수 있었다고도 했다.

리베라는 바깥활동을 자주 하고 활기찬 생활을 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는 "그때부터 경각심을 갖고 날씨 변화에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기후 변화가 프랑스인의 삶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유럽의 기후 변화는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영향을 추가로 미칠 것인가. 툴루즈에 위치한 프랑스 기상청을 찾았다. 장 피에르 세롱 기후변화 분과장은 "프랑스인들이 기후 변화로 입는 영향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그는 "기상청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파리 기온은 2050년에 평균 기온이 섭씨 3.5도 오르고, 기후도 지금보다 훨씬 불규칙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여름철 폭염은 더 자주 닥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프랑스 기상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질병이다. 장 피에르 세롱 분과장은 "1991~1995년 창궐한 유행성 콜레라는 수온이 평소보다 올라가는 엘니뇨 현상과 함께 급속도로 확산됐다"며 "이와 비슷하게 지구 온난화가 질병에 우호적인 환경을 만들어낼 경우, 그에 대한 면역력을 기르지 못한 인류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프랑스인들은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질병에 미래의 삶을 담보잡히게 될지 모를 일이다.

〈 파리 | 김정선기자 kjs043@kyunghyang.com 〉
http://issue.media.daum.net/environment/view.html?issueid=2681&newsid=20080204030011809&fid=20080211024807805&lid=2008020403001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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