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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현장을 가자]마실물 고갈… 농사는 엄두도 못내

경향신문 | 입력 2008.05.05 03:01

ㆍ제6부 2. 파푸아뉴기니, 메마른 대지 먹을 것이 없다

지난 3월24일 오전. 지구 온난화로 이미 가라 앉은 섬들이 생겼다는 파푸아뉴기니(PNG)의 듀크 오브 요크(Duke of York) 군도로 향했다. 요크 군도는 뉴브리튼 섬뉴아일랜드 섬 사이에 둘러싸인 '내해'에 속해 있다. 뉴브리튼의 라바울에서 모터 보트로 1시간 조금 넘게 가면 볼 수 있다.

↑ 배잡이 사이먼이 파푸아뉴기니 뉴브리튼섬에서 해수면이 침식되고 있는 듀크 오브 요크(Duke of York) 섬으로 가던 중 잡은 참치를 들어보이고 있다.

↑ 파푸아뉴기니 보건빌 주 부카섬 공항과 맞닿은 바닷가를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모습. 해수면 침식으로 모래사장이 돼버린 해안가가 보인다. 하얗게 보이는 부분은 산호가 죽어가는 모습이다.

요크 출신의 배잡이 사이먼은 출발한 지 30분쯤 지날 때 바다 위를 낮게 나는 새 떼를 보더니 취재진을 보며 망설이다가 새 떼쪽으로 배를 돌렸다. "새 떼가 있으면 참치 떼가 있다"며 "한 마리 잡고 가게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기름값이 비싸 쉽게 참치 잡으러 배를 몰고 나가지 못하는데 모처럼 '손님'이 부담하는 기름으로 보트를 채웠으니 한 마리 잡고 싶다는 말이다. 새들 사이에서 가짜 미끼가 걸린 낚시를 늘어뜨리고 보트를 움직이자 잠시 후 50~60㎝쯤 되는 참치가 잡혔다. 사이먼은 "참치가 예전보다 덜 잡히고 크기도 작아졌다"고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빗물도 모자라 짠물로 생활용수

요크 군도에 도착해 가장 큰 마을을 찾았다. 메인 섬에 있는 나코쿠르라는 마을. 멀리서 보트가 보이자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수십 명이 취재진을 구경하러 몰려 나왔다. 잠시 후 뚱뚱보 제리가 마을 주민을 제치고 나와 섬과 마을을 안내했다.

나무고 수풀이고 사람이고 다 햇볕에 지친 게 아니라 물구경을 못해 말라 가는 것 같았다. 제리는 "빗물을 모아 먹고 사는데 비가 한 달 반 동안 오지 않아 먹을 물이 없다"고 말했다. 해안가에는 우물처럼 구덩이가 있었다. 제리는 "구덩이를 파면 삼투압 작용으로 염분이 줄어든 바닷물이 고이는데 그 물로 빨래를 하거나 설거지를 한다"고 알려줬다. 공동 빨래터나 취사장이 되는 셈이다. 먹을 물이 모자라 농사는 포기한 상태다. 조그만 카누를 타고 나가 인근 섬에서 낚시로 건져 올리는 물고기 몇 마리가 주식이다. 물은 야자 수액으로 대신하고 있다.

오전인데도 힘없이 야자 나무 그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가뭄에다 물고기도 줄어 제대로 먹지 못한 탓인지 대부분 마른 모습들이었다. 제리처럼 뚱뚱한 사람이 PNG에서는 잘사는 기준이다.

나코쿠르 마을에서 모터보트로 15분 정도 가면 유투암 섬이 있다. 섬 앞 바닷물은 군데군데 시커먼 게 보였다. 바위다. 예전에 딜리마란 섬이 있던 자리다.

어렸을 때 딜리마 섬에서 살다가 섬이 가라앉아 유투암 섬으로 건너왔다는 웨슬리 아르니는 "매일 카누 타고 나가 낚시로 먹고 사는데 옛날보다 물고기가 안 잡힌다"고 말했다.

어획량이 줄어든 것은 산호섬들이 온난화로 죽어 가기 때문이라고 PNG 정부는 보고 있다. 수온이 오르면서 어족이 사라지고 있는데 막상 해당 지역의 섬 주민들은 실감하지 못한다고 정부 관계자가 털어놨다. "쌓아 놓을 정도로 많이 잡는 게 아니라 하루 벌어 하루 먹을 정도만 겨우 잡는 형편이라 주민들이 얼마나 어획량이 줄었는지 실감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섬 가라앉고 건기·우기 뒤바뀌어

웨슬리는 "섬이 왜 잠기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옛날 이야기를 했다. 큰 바다에 커다란 악어 2마리가 살았는데 악어 한 마리가 어느 날 섬에 사는 어여쁜 여자를 사랑하게 됐다. 그래서 산호초를 먹고 악어가 사람이 돼서 예쁜 여자와 살게 됐다. 그러자 홀로 남게 된 한 마리가 엄청나게 요동을 쳐서 섬들이 가라 앉았다는 것이다.

PNG 국가재난센터는 이 지역이 매년 3~4㎝씩 침수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2006년부터 '섬들의 죽음'은 심해져 올해도 여러 개의 섬들이 가라 앉았다. 카타렛 군도는 물론 보건빌의 모투락, 페드 섬도 가라 앉고 있다. 마당 주의 만암 섬은 화산이 폭발해 지난해 주민을 이주시켰다.

PNG 자체도 우기와 건기의 기간이 바뀌고 건기가 길어지면서 가뭄이 심해졌다. 비행기로 본토 격인 뉴기니 섬을 둘러보면 바닷가까지 '비포장 도로'가 이어진 게 보인다. 바다로 흐르던 강들이 죄다 말라 마치 비포장 도로처럼 보이는 것이다. 뉴기니 섬을 가로 지르는 오웬 스탠리 산맥의 만년설은 녹아 사라지고 있다.

라바울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이곳은 원래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사령부가 있을 정도로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러나 1994년과 2000년대 연거푸 화산이 폭발하면서 죽음의 도시로 변했다. 17만명에 육박했던 인구도 지금은 1만5000명에 불과하다. 매일 내리는 화산재는 도시 전체를 잿빛으로 만들고 있다. 숨을 쉬거나 말을 하려고 입을 열 때마다 화산재가 밀려드는 것이 꼭 무슨 핵 전쟁 이후의 도시를 보는 듯했다.

#화산재 뒤덮인 도시 '핵전쟁 치른듯'

보건빌 주 부카에서 만난 섬 당당 행정관인 폴 토바시는 "땅이 얇아져서 섬들에 소금기가 올라와 농사를 짓지 못하고 있어 식량 부족이 심각한 상태"라고 걱정했다. 물도 기후변화가 심각해지면서 예측하기가 힘들어져 빗물을 받아 모아 먹는 것조차도 어려워지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따르면 PNG에서 하루 1달러 이하를 버는 사람은 96년 기준으로 30.2%에 달했다. 2005년 1인당 국민 소득은 660달러였다. 평균 잡아 PNG 국민 한 사람이 하루 1.8달러씩 번다는 말이다. 빈곤선도 53.8%다.

소수의 부자를 제외하면 전체 국민이 하루 2달러 이하의 생활비로 사는 상황에서 최근 식량 가격 급등은 이들에게도 재앙으로 작용하고 있다.

< 라바울·부카 | 글·사진 김주현기자 amicus@kyunghyang.com >
http://issue.media.daum.net/environment/view.html?issueid=2681&newsid=20080505030107183&fid=20080519021905767&lid=20080428032506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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