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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현장을 가다]제8부-① ‘알래스카의 투발루’ 시스마레프 섬

경향신문 | 입력 2008.06.23 10:15 | 수정 2008.06.23 10:19

ㆍ얼지 않는 바다… 모래해안 야금야금

"바로 여기예요. 아침에 산책했던 길이 저녁에 오니 없어졌더군요. 저 쓰러져가는 전봇대 앞에 도로, 집, 절벽이 차례로 있었어요. 지금은 모두 바다로 변해버렸지만요."

↑ 시스마레프 섬의 어린이가 영구 동토층이 녹아 생긴 물구덩이에 발을 담그고 있다.

↑ 해안 침식으로 무너진 주택의 잔해가 눈 덮인 바다에 흩어져 있다. 알래스카 시스마레프 섬 남쪽 해안은 지구 온난화로 매년 1~1.5m씩 깎여나가고 있다.

지난달 26일 알래스카 서북부 시스마레프 섬. 에스키모 딘 코즈쿡(49)의 손가락은 눈 덮인 바다를 가리키고 있었다. 2003년 11월 폭풍으로 몇 시간 만에 해안 2m 정도가 깎여 나간 자리다. 무너진 흙더미에는 판자, 싱크대, 깡통, 심지어 변기 뚜껑까지 굴러다녔다. 위태롭게 해안가에 걸쳐 있던 집들이 땅과 함께 무너진 흔적이다.

1970년대 시작된 해안 침식으로 시스마레프 남쪽 해안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폭풍 강도가 거세진 97년부터는 해마다 1~1.5m씩 깎여나가고 있다. 큰 폭풍이 불어닥친 97년, 2001년, 2002년 등에는 평균 6~15m가 깎였는데 한번에 38m가 깎여나간 적도 있다. 이 섬의 최대 폭은 400m에 불과하다.

'미군 엔지니어 연합'의 2006년 보고서에 따르면 시스마레프에서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기간은 최대 15년이다. 주민 615명은 2002년 투표를 거쳐 알래스카 본토로 이주하기로 결정했다. 400여년간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버리기로 한 것이다.

지구 온난화로 땅이 사라지고 있는 시스마레프는 북극의 투발루(지구 온난화로 가장 먼저 물에 잠길 것으로 예상되는 남태평양 섬나라)다.

# 결빙 시기 늦어지면서 거센 폭풍

시스마레프의 해안 침식이 본격화한 것은 해빙(海氷·Sea Ice)의 형성이 늦어지면서부터다. 마을 앞 추크치 해는 10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얼어붙어 있었다. 그러나 10여년 전부터 결빙 시기가 늦어졌다. 10월이면 얼기 시작하던 바다가 11월이 돼도 좀처럼 얼지 않았다. 10월마다 폭풍이 불어닥쳤다. 천연 방어벽이던 해빙이 사라지면서 모래로 된 땅은 깎여 나가기 시작했다.

북극권 8개국 공동위원회가 2005년 발간한 '극지방 온난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50년간 알래스카의 연 평균 기온은 화씨 3.6도에서 5.4도로 올랐다. 해빙의 면적은 지난 30년간 최대 20%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해빙뿐만이 아니다. 시스마레프 부족회의 위원 로버트 이유투아나(48)는 "얼음 위에서 사는 물범과 바다코끼리의 수가 줄어들고, 상태나 냄새도 예전 같지 않다"고 말했다. 물범은 시스마레프 주민인 에스키모들의 주 식량이다. 시스마레프 학교 과학교사 켄 스티넥은 "유럽이나 미국 본토에 사는 유럽형 참새 2마리가 지난달 말 학교에 둥지를 틀었다"며 "기후 변화로 새들의 이동 경로가 교란된 것 같다"고 말했다.

영구 동토층이 녹으면서 동네 곳곳에는 물구덩이가 패었다. 자고 일어날 때마다 하나씩 더 생길 정도다. 영구 동토층을 덮고 있는 미세한 모래가 물과 뒤섞이면서 진창이 생겨 고무 장화가 생활필수품이 됐다. 유일한 포장도로인 비행기 활주로도 울퉁불퉁 파인 지 오래다. 주민들은 자동차 대신 '포 휠러(4-wheeler)'라고 부르는 ATV나 스노 머신을 이용한다. 포휠러가 물구덩이를 달릴 때마다 물보라가 튀었다. 콧물을 입에 문 아이들은 장화를 찰방거리며 까르르 웃어댔다.

# 전통 고수 에스키모 이주 불가피

시스마레프에는 아직까지 상·하수도 시스템이 없다. 물은 빗물을 모으거나 눈을 녹여 만든다. 수세식 화장실이 갖춰져 있지 않아 집집마다 요강을 사용한다. 숙소였던 비상응급센터 뒤에 큰 연못이 2개 있었는데, 거기가 하수를 모으는 곳이다. 하수를 처리하기 어렵다보니 1회용품을 많이 쓴다. 종이 접시, 스티로폼 컵, 플라스틱 수저가 보편적이다.

그래도 전기는 들어온다. 마을 공동 발전기로 각 가정에 공급한다. 위성 안테나로 케이블 방송을 보고, 무선 인터넷도 사용한다.

일상 생활은 상당 부분 서구화됐지만 시스마레프 주민 대부분은 여전히 '사냥꾼'이다. 얼음이 풀리는 6월부터 보트를 끌고 나가 물범을 잡고, 봄·가을에는 카리부(순록)나 새를 잡는다. 동네 곳곳에서는 카리부의 가죽이 말라가고 있었다. 일찌감치 물범 사냥을 다녀온 집들은 고기를 얇게 저며 현관에 걸어 말렸다. 물범 지방을 끓여 만든 물범 기름은 에스키모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스 가운데 하나다.

# 최대 2억 달러 이전비용 걸림돌

"우리는 수백년 동안 바다의 물범과 땅의 작은 포유류에 의존해 살아왔습니다. 알래스카 227개 부족 가운데서도 가장 독특한 생활 방식과 문화를 갖고 있어요. 이주가 불가피하다면 조상 대대로의 생활 방식을 유지할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시스마레프 침식·이주 연합 대표 토니 웨이오우아나(49)는 "해발 고도가 높고 영구 동토층이 많지 않으면서 바닷가에 면한 지역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알래스카 주 정부가 2006년 본토의 틴 크릭 지역을 추천했지만 주민들은 "해빙이 적어 전통 생활방식을 유지하기 힘들다"며 동의하지 않았다. 2009년 4월 목표이던 이주 시작 시점은2012년으로 연기된 상태다.

막대한 이주 비용도 걸림돌이다. '미군 엔지니어 연합' 등에 따르면 시스마레프의 이주 비용은 1억~2억달러로 예상된다. 주·연방 정부는 이주 비용을 지원하는 대신 2700만달러를 투자해 시스마레프 남쪽 해안에 914m 길이의 방파제를 세우는 중이다. 환경단체인 '알래스카 보존 연합'의 대외협력 담당자 마가렛 매누소프는 "상처는 치료하지 않고 1회용 반창고만 붙이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3월 알래스카 기후영향평가위원회가 펴낸 최종 보고서에 따르면 해안 침식 문제를 겪고 있는 알래스카의 마을은 모두 162곳이다. 특히 시스마레프, 뉴톡, 키발리나 3곳은 10~15년이 지나면 사람이 살 수 없을 것으로 평가됐다. 키발리나 부족회의는 지난 2월 엑손 모빌 등 24개 정유·전력·석탄회사를 상대로 "화석연료 업체의 이산화탄소 배출로 해안 침식이 가속화되고 있다"며 피해 보상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27일 밤 코즈쿡이 2003년 폭풍 당시 촬영한 동영상을 들고 기자를 찾아왔다. "화석연료를 가장 적게 쓰는 우리가 지구 온난화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이 한국 사람이니 유엔에 이 사실을 알려달라"는 이유였다. 영상 속의 파도는 해안가 집을 삼킬 기세로 밀어닥치고 있었다. 눈 쌓인 바다에 버려져 있던 판자가 바로 이 집 지붕이었다.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프레드 데이비스(50)가 중얼거렸다. "저 앞에 우리 할머니가 고기 말리던 덕장이 있었어. 할머니가 그랬어. 언젠가 바닷물이 시스마레프를 삼킬 거라고. 정말 그렇게 되는 건가…."

< 글·사진 시스마레프·앵커리지 | 최명애기자 >
http://issue.media.daum.net/environment/view.html?issueid=2681&newsid=20080623101512135&fid=20090423103609177&lid=2008062310151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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