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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변화현장을 가다]제6부 ① 넉달새 3~5m 침수…“5년후면 섬 사라질 것”

경향신문 | 입력 2008.04.28 03:25

지난달 26일 새벽 5시 파푸아뉴기니의 부카. 점점 불안해진다. 파푸아뉴기니 국가재난센터를 통해 소개받은 보건빌 북쪽의 카타렛 군도를 가기로 한 날인데, 배잡이를 하기로 한 로렌스 마가이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전날 부카시 관청에서 카타렛 출신의 유능한 배잡이라고 소개받은 사람이다. 배삯을 미리 달라고 하더니 약속시간을 넘겼다. 5시50분쯤 되자 로렌스가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 카타렛 군도의 피율섬에서 주민인 레이몬 케소(오른쪽)가 올들어 바닷물에 침수된 지역을 알려주고 있다. 밀물에 흙이 쓸려 나가 뿌리를 드러낸 야자수들과 쓰러진 나무들이 보인다.

↑ 파푸아뉴기니 보건빌주 북쪽에 위치한 카타렛 군도의 한(Han)섬 모습. 섬을 둘러싼 옅은 코발트색 바다는 산호초가 자리잡은 곳이다. 산호초로 이뤄진 카타렛 군도는 최근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가라앉고 있다.

로렌스가 기자를 태우고 가는 배는 40마력짜리 모터보트다. 유원지에서 흔히 보던 보트보다 약간 긴 8m 정도로 '바나나보트'라고 불렀다. 불안했다. 보트를 가로질러 얹은 판자가 '좌석'이다. 구명조끼도 항법장치도 없이, 나침반 하나 달려 있다. 이걸 타고 4시간 가까이 바다를 헤쳐가야 한다. 출항신고 같은 것도 없다. 바다 한 가운데서 사라져도 누구 하나 모를 상황이다.

30분쯤 나가니 근해를 벗어났는지 파도가 거세지기 시작했다. 보트 뱃머리가 파도 때문에 치솟아 시야에서는 수평선이 안보이고 보트 앞머리만 보였다. 파도를 따라 보트가 롤러코스터를 타듯 위로 솟구쳤다 가라앉으면 뱃전으로 파도가 밀려왔다. 해가 뜨면서 뭔가 뱃전 옆에서 푸다닥거리며 물수제비를 뜨면서 날아간다. 날치다. 조금 가니 옆에서 무엇인가 불쑥 솟았다가 파도로 사라지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돌고래 떼라고 했다. 그제야 이게 남태평양이구나 실감했지만 경치를 감상할 여유는 없었다. 요동치는 보트에서 중심을 잡느라 온 몸에 힘을 꽉 주고 뱃전을 양팔로 굳게 잡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 자연방파제 산호 온난화로 떼죽음

뱃전을 움켜쥔 손과 팔이 아파올 즈음 파도가 다시 잠잠해졌다. 카타렛 군도에 거의 도착한 것이다. 카타렛 군도는 산호로 이뤄진 한(Han), 피율(Piul), 예실(Iesil), 양긴(Yangin), 욜라사(Yolasa), 휴에네(Huene) 등 6개의 섬에 1600여명이 살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나라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투발루나우루와 비슷한 위도 상에 위치해 있다. 섬들을 둘러싼 산호초가 천연 방파제가 되어 남태평양의 거센 파도를 막아주고 있었다. 먼 바다의 파도는 마치 모래사장에 파도가 부서지듯 섬 1~2㎞ 밖에서 산호초에 걸려 물보라를 만들었다. 섬들은 대부분 한강 선유도의 2~3배 정도 크기다. 섬을 둘러싸고 군데군데 흰색 덩어리와 검정색 암초 같은 것이 보였다. 로렌스는 "하얀 것들은 산호가 죽은 것이고 검게 변한 것은 산호가 죽어 바위처럼 굳은 것"이라며 "3~4년 전부터 부쩍 늘었다"고 알려줬다.

산호는 지구 온난화로 죽어가는 대표적인 생물이다. 화려한 산호빛은 산호 조직 속에 공생하는 미세한 공생와편모조류가 갖고 있는 색소 때문에 나타나는데, 산호가 하얗게 변하는 것은 공생조류가 수온 상승으로 사라지면서 탈색되기 때문이다. 지구 온난화로 섬도 가라앉고 산호도 사라지는 셈이다.

이미 배가 오는 것을 보고 있던 한섬 주민들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섬이 가라앉는다고 해서 취재차 왔다"고 하자 30대 중반의 남자가 나섰다. 토마스 파플링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얼마 전에 독일 방송국에서 섬이 침수되는 것을 찍고 갔다"면서 섬의 서쪽으로 안내했다. 15분 정도 걸었을까, 섬을 가로지르자 땅이 질퍽질퍽해지더니 해안가에는 야자수들이 뿌리를 흉하게 드러낸 모습이 보였다. 토마스는 "바닷물이 올라오면서 땅이 늪지가 돼가고 해안가 나무들은 만조 때마다 물에 잠겨 뿌리가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섬이 가라앉기 시작한 것은 10~15년 전으로 기억한다"는 토마스는 "최근 침수가 눈에 띄게 심해져 지난 해에만 20m가량 가라앉았다"고 말했다. 또 "서쪽부터 침수가 사작돼 섬 동쪽으로 집을 옮겼다"며 "밀물 때가 되면 서쪽 해안 대부분이 물에 잠겨 100m 넘게 물이 올라오는 곳도 있다"고 덧붙였다.

천연 방파제 노릇을 하던 산호초가 수온 상승으로 죽어가자 남태평양의 거센 파도가 바로 들이닥쳐 산호섬의 땅이 바닷물에 휩쓸려 사라지면서 섬 자체가 가라앉고 있는 것이다. 카타렛 군도 주민들은 그동안 산호초가 보호해준 '내해'에서 카누로 물고기를 잡고 야자열매와 함께 바나나·타로·얌 등의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는데 바닷물이 농장을 덮치면서 농사를 포기했다. 몇년 사이 물고기도 줄어 하루종일 잡은 물고기 몇 마리와 야자나무 열매가 유일한 식량이 되고 있다. 주민 한 사람이 "농장이 바닷물에 잠기자 보건빌 주 정부에서 조그만 방파제를 쌓아줬지만, 1년 사이 다 망가졌다"고 끼어들었다. 방파제라고 한 것을 보니 돌덩이와 커다란 조개 껍질을 철망에 넣어 해안가에 늘어놓은 수준이다.

# 해안가 야자수 뿌리 다 드러내

농장이 사라지면서 식량난이 심해졌다. 덩달아 비도 오지 않아 식수 부족도 일상화하고 있다. 작살을 손질하던 한 노인은 "물고기 잡히는 게 예전 같지 않다"면서 "땅은 계속 가라앉고 비는 줄어 먹을 물이 모자란다"고 하소연했다. 갈증이 심해지면 야자나무에 올라가 야자를 따서 해갈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섬 곳곳의 야자나무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있고 주변에는 야자열매가 쌓여 있었다. "주 정부에서 3개월에 한 번씩 식량지원을 한다고 들었다"고 물었지만 "지원 받았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농장이 침수돼 늪지로 변하면서 불어닥친 또 다른 재앙은 말라리아다. 한섬에서 간호사로 일한다는 마다는 "늪지 때문에 모기가 늘어나면서 예전에 사라졌던 말라리아가 재발하고 있다"면서 "지난 해 서너명, 얼마 전에는 돌도 안된 젖먹이가 말라리아로 죽었다"고 알려줬다. 실제로 농장 지역을 지날 때 모기가 마치 해질녘에 뭉쳐 있는 하루살이들처럼 일행에게 달라붙었다. 말라리아는 제 때 치료만 받으면 살 수 있는 병이지만, 섬 주민들과 육지를 이어주는 교통수단이 사실상 전무해 걸리면 죽음만 기다려야 한다. 마다는 "얼마 전 세상을 뜬 아이도 뭍으로 옮겨 주사만 맞았어도 살 수 있었다"고 슬퍼했다.

한섬 옆에 있는 피율섬의 사정은 더욱 심각했다. 밀물 때마다 바닷물이 섬 중앙을 가로질러 들어왔다. 섬 중앙에도 바닷물에 휩쓸려 뿌리를 드러낸 야자나무나 쓰러진 나무들이 곳곳에 보였다. 올해 안에 섬이 2개로 쪼개질 것 같았다. 지방공무원으로 피율섬에 근무한다는 레이몬 케소는 "올들어서만 섬이 3~5m 가라앉았다. 산호가 죽어가서인지 물고기도 예전처럼 잡히지 않는다"고 알려줬다. 농사가 불가능해지면서 주 정부가 가끔 식량을 지원해줬는데 최근 1년간은 지원도 끊겼다고 덧붙였다. 마침 뗏목을 타고 한섬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레이몬은 "그나마 피율섬이 물고기가 잘 잡히는 터라 한섬의 야자 열매와 물물교환하러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식량·물 부족… 젊은이들은 뭍으로

파푸아뉴기니 정부는 카타렛 군도가 10~20년 사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섬 사람들의 체감지수는 다르다. 토마스는 "5~6년이면 섬이 다 가라앉을 것 같다"고 우울하게 말했다. 그렇다고 뾰족한 해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유일한 방법은 뭍으로 이주하는 것인데 섬사람들은 그것이 두렵다. 1990년 초에도 섬이 가라앉는다고 해서 뭍으로 이주했는데 당시는 보건빌 주가 중앙정부와 독립전쟁을 벌이던 시기라 섬사람들은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쫓기다시피 다시 섬으로 돌아왔다. 섬이 가라앉아 죽게 되는 것 못지않게 두려운 일이다. 레이몬은 "육지로 가고 싶지만 1990년대 이주했다가 뭍사람들의 차별로 되돌아온 기억이 있어 가기 싫다"고 말했다.

취재를 마치고 보트에 올라서는데 마다가 젖먹이를 안고 "같이 뭍으로 가도 되냐"고 물었다. 그러라고 하자 갑자기 10여명이 몰려 들었다. 교통수단이 거의 전무한 상태라 뭍에 친인척이 있는 사람들은 다 나선 것 같았다.

부카로 돌아오는 길에 내내 가슴에 묻어뒀던 질문을 던졌다. "섬에 젊은 남자는 안 보이고 여자나 어린이뿐이다. 노인도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하자 마다는 "젊은 사람들은 뭍으로 돈 벌러 나갔고 노인들은 일찍 죽는다"고 답했다. 먹거리가 야자열매 아니면 이따금 잡히는 물고기뿐이라 영양실조로 50살이 넘으면 기력이 급격히 약화돼 대부분 60세 전에 죽는다고 했다. 마다의 아기도 먹은 게 없어 부카로 돌아가는 4시간 동안 대소변 한 번 보지 않았다. 안쓰러워 가지고 간 크래커와 햄 등을 내놓자 보트가 왁자지껄해지며 조그만 파티가 열렸다. 그들에게 과자 몇 개가 이날 먹은 유일한 '음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부카·카타렛 군도 | 글·사진 김주현기자 >
http://issue.media.daum.net/environment/view.html?issueid=2681&newsid=20080428032506786&fid=20080519021905767&lid=20080428032506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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