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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현장을 가다]제3부 ① 녹아 내리는 히말라야 빙하

경향신문 | 입력 2008.02.11 02:48

 
강인한 인상의 람바부 셰르파(46)는 에베레스트 자락에서 태어났다. 히말라야 골짜기에 흩어져 사는 60여 소수민족 중 하나인 셰르파족이다. 그는 "한국인들은 셰르파를 직업의 하나로, 등반가의 짐을 나르는 포터로 잘못 안다"며 "등반가의 길잡이인 셰르파족은 네팔 소수민족 중에서도 가장 '잘 나가는' 사람들"이라고 어깨에 힘을 준다.

↑ 히말라야 빙하의 67%에서 해빙이 확인되고 있다. 사진은 에베레스트 가는 길의 광대한 빙하. ICIMOD 제공.

↑ 1975년(위) 보다 규모가 커진 2006년 임자 빙하호수의 모습. ICIMOD 제공.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아래 쿰부 지역에 그의 고향마을 체레메가 있다. 외부세계와 떨어져 사는 고산마을 특성상 람바부에게 "초모룽마(에베레스트의 다른 말로 '세계의 어머니'란 뜻)와 눈, 눈이 수만년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빙하는 떼어놓을 수 없는 친구들"이다. 그 친구들 속에서 람바부는 20여년째 등반객들의 길라잡이를 하고 있다. "왜 정상에 꼭 올라야 하는지 지금도 이해는 안된다"면서도 유럽 등반팀을 이끌고 에베레스트를 여덟번 올랐다.

그런 람바부도 요즘 '등반 신기술'을 배우고 있다. 배워야만 한다. 지난해 12월14일 오후 '세계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로 꼽히는 카트만두티베트사원 보드나트. 그는 먼저 "옴마니 반메홈" 진언을 외며 마니차(티베트 불경이 새겨진 원통)를 하나씩 돌려 사원을 한바퀴 돈다. "요즘 암벽 타는 기술을 배운다. 언제부턴가 초모룽마 오르는 길 곳곳에 암벽이 나타났다. 빙하가 녹으면서 속에 묻혀있던 바위들이 드러난 것이다. 바위도 잘 타야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병풍처럼 도심을 둘러싼 히말라야 만년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람바부는 "초모룽마 주변도 참 많이 변했다"고 했다. "20년 전만 해도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EBC) 주변에는 아이스폴(급경사를 이룬 넓은 빙하)이 길게 내리뻗었다. 그 아이스폴을 지금은 캠프 위로 한참 올라가야 만난다. 4~5㎞ 정도가 녹아버린 것 같다. 빙하가 녹으면서 빙하 호수들도 많이 생겨났다."

그는 "기후변화, 지구온난화란 말을 아는 셰르파 사람은 드물다"며 자신도 얼마 전에야 이해했다고 털어놨다. "등반팀에는 날씨가 매우 중요한데, 요즘은 날씨를 점치기가 아주 힘들다. 우기가 지나고 등반이 활발한 10~11월에는 보통 눈이 오지 않았는데 요즘은 그렇지도 않다."

문맹률이 60%를 넘어서고, 자신들만의 세상을 꾸려가는 고산지대 소수민족에게 기후변화란 말은 낯설다. 기후변화의 특성상 눈을 밝히고 구석구석을 관찰하지 않으면 심각성을 눈치채기 어렵다.

히말라야의 환경과 생태 등을 연구하는 다국적연구소 국제종합산지개발센터(ICIMOD)에서는 히말라야의 심각성을 '과학적'으로 확인할 수있다. 매캐한 매연, 쉼없이 울리는 자동차 경적 소리로 가득한 카트만두 도심을 벗어나 1시간여를 달리면 고대도시 파탄이다.

파탄 근교 ICIMOD 건물 로비에 들어서면 온난화로 몸살을 앓는 히말라야의 자료가 가득하다. 동행한 텐디 셰르파(32)는 "쿰부가 집인 나도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정말이냐"며 기자보다 더 많은 질문을 쏟아낸다.

ICIMOD의 빙하학자 삼즈왈 라트나 바즈라차랴는 "히말라야 해빙은 전문가로서 볼 때 아주 심각하다"고 입을 뗐다.

히말라야 빙하의 67%에서 해빙이 확인됐다는 세계자연보호기금(WWF) 발표, 지금의 해빙 속도라면 50년 뒤엔 히말라야 빙하가 사라질 것이라는 유엔환경계획(UNDP)의 경고 등도 소개한다.

바즈라차랴는 "대표적인 예로 갠지스강의 원천인 간고트리 빙하는 2000년까지만 해도 매년 18가 줄었으나 이후 속도가 빨라져 연 25까지 줄어들고 있고, 에베레스트 아래 임자 빙하는 1년에 74까지 사라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산악 빙하인 히말라야의 해빙은 단기적으론 빙하호수를 만들고, 산사태, 홍수를 일으킨다. 장기적으로 보면 빙하가 적어지면서 수량이 줄고 식수난 등의 파장은 상상을 초월한다."

히말라야의 '이상해진 날씨'는 네팔에서 만난 다른 셰르파족들로부터도 들을 수 있다. 쿰부지역 갇 마을에서 농사와 관광객 롯지(숙소)를 운영하는 칸디 셰르파(54·여). 외손자를 보기 위해 카트만두에 온 그녀는 "작년 2월에 눈이 엄청 내렸다. 보통 2월엔 눈이 잘 오지 않기 때문에" 모두들 당황했단다.

트레킹 가이드인 사르키 셰르파(45)는 "눈과 얼음만 있던 EBC 주변에 물이 많아졌다"며 "그러나 관광객이 몰리면서 물이 더러워져 먹기는 꺼림칙하다"고 말했다. 그는 "등반객이 늘어나니 돈을 많이 벌어 좋다"면서도 "쓰레기 등 환경오염은 큰 걱정"이라고 했다.

'눈의 보금자리'란 뜻의 히말라야. 셰르파족 등 산속 사람들에겐 단순한 산이 아니라 신이 머무는 자리란다. 기후변화의 두려움을 아는 사람들은 그래서 더 불안하다. 칸디 셰르파는 "얼마 전만 해도 환경변화를 신이 노한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젠 온난화의 영향이란 것을 안다"며 "신이 노하면 달래기라도 한다지만 기후변화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염려했다.

아무리 높은 경제성장률도 줄 수 없는, 영혼의 안식을 선물하는 히말라야. 인간의 끝없는 탐욕으로 지금 히말라야 빙하는 차가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카트만두 | 도재기기자 jaekee@kyunghyang.com 〉 < 경향신문·미디어다음 공동기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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